사람






황작가는 문제를 낸다. 이건 어떻게 쓰나 보자는 심산이듯이 말이다..



궁평(경기도 화성 근방에 있는,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인 듯하다)에서.. 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사진을 보내왔다. 그는 "사진 보냈다"라는 말만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때 왠지 느낌이 불안했는데 사진을 실제로 대하고 나니 머리가 막막해진다.



앞의 3개의 포토에세이는 사진을 보자마자 나름대로 감상문을 30분 내로 써댔는데... 이건 사진을 받아 본지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 편집자에게서 평을 달라는 독촉을 받고서도 선듯 감상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사진 좋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뭐 그리 고심을 해야 하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도 느끼면서 다시 한번 더 사진을 본다.



도대체 저걸 찍은 작가의 마음이 무엇일까....



맨 처음 올린 포토인 '타인'이 일단 생각난다. 하이 컨트레스트의 해변 사진, 서로 같이 있으면서도 전혀 함께 있지 않는 듯한 느낌의 사람들... 거기서 시간이 지나면 석양이 져 노을이 되고 빛의 분위기는 자연히 로우 컨트레스트가 된다.



풍경은 그냥 찍으면 된다. 왜 찍었냐고 묻는다면 그냥 거기에 있어서 담았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수준 높은 철학이다. 너무 수준이 높기에,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른다는 철학가인양 하는 등산가처럼 그런 속물적인 답에 지나지 않는다. 난 황작가를 그런 속물로 보지 않기에 그가 왜 저것을 찍어 나에게 보내왔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래... 답이 나왔다.



황작가는 자신을 찍었다.
그의 마음을 담은 모습은 저기 쭈구려 앉은 사람의 몸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눈은 그 몸 속에 기어들어간 그의 마음의 모습을 본다.



마치 앞으로 머릴 조금 더 내밀어 물속에 머리를 쳐박아 버리고자 하는 지도 모르는 저 마음... 뭔가 엿같은 상황에 대한 그의 심정은 그 쭈그려 앉은 사람의 모습으로부터 화면 전체로 스며들어 가고 있다. 그 스며들어감을 어떻게 아냐고?



심정의 불안을 찍으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주체는 안정적인 구도의 이미지 중심라인 위에 자리잡고 있다. 작지만 그 주체는 마치 화면 전체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자리잡고 있으면서 수평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이미지 라인 전체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그런데 고독은 아니다. 차라리 고독이었으면 작가에게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연 혹은 주변 세계는 작가가 고독에 자리잡고 있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서해 저편으로 지는 해가 불안의 심정에 쭈그려앉은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 햇살이 앞의 물 속으로 쳐박고 싶어하는지도 모르는 자신을 붙들어 잡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넌 죽을 자격도 없어..' 하고 말이다.



이 정말, 작가에게 엿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을 보는 나의 마음이 너무 무거워진다...

by 와이드샷 | 2008/08/05 15:13 | 황문성의 포토에세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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