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7일
팜므파탈: 문법에 대한 강박관념으로서 짜여진 드라마 트루기

드 팔마는 영화 잘만들기로 정평이 난 장인으로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그런 그가 팜므파탈에서 보여준 것은 장인으로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상언어의 현란함이다. 그 현란함에 우리는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냈던 장면들에 대한 집중함이 영화가 뒤로 가면 갈수록 하나의 한탄으로 변한다. 저렇게 만들기 위해 앞에서 그런 수작을 부려놓았나 하는 탄식 다름 아니다.
일단 영화의 전체 맥을 가로짖는 장면인 여주인공 릴리가 자신과 닮은 딸은 잃은 여자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고 난 다음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자. 욕조에는 물이 넘쳐 흐르고 그녀의 얼굴은 그 물 아래로 빠져든다. 그녀는 왜 물 속으로 빠져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일종의 모든 일이 잘 되었다는 평온함 일수도 있고, 그 평온함 속에서 새로운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된다는 폭품전야의 고즈넉함일 수도 있다. 물론 당연히 관객은 후자를 생각하게 되고 사건은 그렇게 진행된다.
이후 딸을 잃은 여자가 자살을 하고 주인공 릴리는 그녀로 변장하여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나중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가 되는 남자를 만나 그와 결혼을 하지만, 남편인 그가 프랑스 대사로 오는 바람에 문제가 된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그녀가 화장실 욕조에서 얼굴을 물 아래로 빠져들게 되는 그 순간 부터 이루어졌던 그녀의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감독의 영화문법의 설정은 이러하다. 그녀가 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주어진 장면은 강물이다. 그녀는 자신을 쫓는 공범들에 의해 다리에서 떨어지게 되고 강물에 빠진다. 강물 속으로 빠진 옷을 입은 그녀는 물 속으로 내려가면서 나신이 된다. 나신의 그녀는 앞에 시작했던 욕조 속의 나신의 그녀와 일치한다. 그리고 강물 속의 나신의 그녀가 물 밖으로 나오려 하면서 욕조의 물 아래도 담겨져 있었던 그녀의 얼굴이 밖으로 올라온다,
이런 설정에서 본다면 그녀는 바닷물에 빠지든 강물에 빠지든 어쨌던 빠져야 한다. 그래야만이 욕조안으로 빠져 들어간 그녀의 꿈에서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드 팔마의 이 영화의 문제는 여기서 부터 생긴 것 같다. 강물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공범들이 여 주인공을 그들의 분노에 의해 떨어뜨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바쳐 훔친 몇 백억짜리 다이아몬드는 찾기 위해 7년을 감옥살이 하고서도 찾아낸 여주인공을 잡자마자 강물에 떨어뜨려 죽어버리는 것이 당연한가? 그렇 수 있다 치자. 범인들의 성격이 수틀리면 자기의 목적도 상실하고 죽이고 보는 성격이다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런제 그렇게 억지로 몰고 나가기에는 드 팔마도 싫었던 모양이다. 범인이 그런 성격이란 것을 앞에서 설명해준다. 범인 중의 한명은 호텔에서 여주인공을 잡자마자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여주인공을 호텔의 난간에서 제 홧김에 못이겨 떨어뜨려 죽여버린 것이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죽지 않고 스폰지 같은 바닥에 떨어져 자기와 닮은 여자의 부모에 의해 발견되어 욕조 에 몸을 담그는 데까지 가게 된다)
그러니 꿈 속에서 범인들은 현실에서 다이아 몬드를 찾기보다는 홧김에 자기를 떨어뜨려 죽여버리기에 자신과 공모하여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여자친구들 달리는 트럭으로 던져 깔아 죽게 만들어버리고 자기 또한 강물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꿈을 충분히 꿀 수 있다는 설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설정은 범인들에 의해 떨어져본 경험이 있는 여주인공이 꾼 꿈이기에 그녀는 그런 경험에 의해 충분이 그런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라는 점에서 실제로 범인들이 비 합리적 행위를 하느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드 팔마는 바로 이 점을 노린 것 같다. 그리하여 그는 꿈이 주는 허위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영화속 인물들의 캐릭터 상의 모순들을 허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모순은 감독의 능력 부족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영화 주인공들의 나름의 상상이 만들어 낸 것으로서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감독의 역량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캐릭터의 모순을 여 주인공의 상상이라는 것으로 보완하면서 씨줄과 날줄의 교묘한 짜집기로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든 드 팔마의 팜므파탈이란 영화에 대해 한심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작된 허구의 허구를 만드는 이유는?
어차피 영화는 비현실이고 허구이다. 허구를 만드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이어지지 않는 사건의 연관관계를 허구에서나마 이어보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어보려고 함이란 사건의 이유와 원인을 나름으로 끌어내봄으로써 그 사건과 관계되어 있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건 간의 유의미성 혹은 문제성(problematics)을 드러내보이기 위함이다.
작가가 나름의 문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문제성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보는 관객이나 독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허구의 연결고리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문제성을 찾아내며 동의하거나 감동하거나 비판하기도 하는 것이다.
드 팔마가 팜므파탈이라는 허구 속에서 허구속의 여 주인공이 또 그녀만의 꿈을 꾼다는 허구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절묘한 허구의 연결고리를 잘 만들고 난 다음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의미성을 지닌 문제성이 존재하는가? 그 답은 단연코 없다.
드 팔마가 "팜프파탈이란 이런 존재이다"라는 정의를 하기 위해 이 허구 속의 허구를 만들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 욕조에서 시작되는 여 주인공의 꿈 속에 이야기 속에는 팜므파탈이 없다. 꿈을 꾸기 이전에 자기가 지었던 죄와 그로 인한 벌로 부터 도피하기 위해 움직인 그녀의 행보와 그 죄와 벌로 부터 도피할 수 없는 되돌아옴의 강박관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전까지 있어왔던 팜프파탈에 관한 어떤 영화도 팜프파탈의 여주인공이 죄와 벌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두려워 하면서 그것으로 부터 도피하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드 팔마의 팜므파탈은 팜므파탈이 아니라 그저 욕심이 많았던 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드 팔마는 조작된 허구를 만들고, 그 허구 속에 또 허구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성이 부재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팜프파탈은 겉치장과 화려한 영화적 테크닉과 성적 유혹을 일으키는 섹슈얼리티만 무성할 뿐 내용이 없는 영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앞의 글에서 말한대로 장인 정신만 있고 철학이 부재한 감독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한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by | 2007/07/17 15:10 | 영화이야기 | 트랙백(3) | 덧글(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Soma.
Ashes of soma. Soma to florida. Soma online sales. Soma....more
제목 : Soma side effects.
Soma. Soma online....more
제목 : Vicodin.
Vicodin. Vicodin side effects. Vicodin addiction. Vicodin without a prescription. Detox vicodin. Buy vicodin without a prescription. Buy vicodin....more
영화제목인 팜므파탈은 여주인공이 아닙니다.
님처럼 영화의 줄거리나 따라다니고 식상한 교훈따위나 쫓다가 이미지의 퍼즐로 완성되는 영화 전체의 메세지는 못보고 결국 기억에 남는거라곤 섹슈얼리티밖에 없어서 철학의 부재라느니 말도안되는 글이나 쓰게만드는
바로 이 영화자체가 팜므파탈입니다.
글은 잘쓰시는거 같지만 드팔마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엔 님 영화내공이 넘 부족한것 같습니다. 앞으론 걍 줄거리위주의 영화에 관한 글 쓰시는걸 추천